청 춘 과   프 리 지 아

애열님 (@_LS___H)

_주의: 등장인물의 우울, 색채와 공간에 대한 환각 묘사가 직간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사실, 어른이 되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니까.’

    창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등지고 김각별은 거기에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풍경에 녹아 사라질 것 같은 위태로움. 가벼운 어조로 꾸며낸 오래된 변덕. 익숙했던 얼굴이 삽시에 낯설고 어지러운 것으로 변해서, 박잠뜰은 잠시나마 이 공간이 실은 꿈이 아닌지 의심을 품었다. 하늘은 물감을 태워 부은 캔버스고 창틀은 그림과 현실 세계의 경계였다. 서서히 뻗쳐오는 겨울 공기와 함께 성스럽게 무대화되어가는 부실 안에서. 김각별의 소금기 없는 목소리를 대신해 창에 비친 흰 구름이 길게 흘렀다.)





    그 대본을 처음 확인하고, 정공룡은 김각별이 또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손에 들린 두꺼운 종이 뭉치는 아무리 넘겨도 똑같은 얼굴만 반복하여 드러낸다. 완벽한 백지. 정공룡은 마지막 장까지 모조리 넘기고서야 손을 멈춘다. 하얀 종이의 매끈한 표면이 천장에서 쏟아진 형광등 빛을 따갑게 반사한다.


    김각별이 완성된 대본을 나눠주며 그들에게 강조한 건 딱 두 가지였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 대본을 보여주지 말 것. 혼자 있을 때만 내용을 숙지할 것. 그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본을 가방에 넣었다. 이상하고 묘한 요구였으나 청춘의 각본가는 결국 김각별이었으므로. 그는 두 사람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낸 뒤에야 당부를 멈추고 그게 우리 연극부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생긴 지 5년밖에 안 된 동아리에 전통은 좀 거창하지 않아요?” 정공룡이 그렇게 대꾸해도 김각별은 히쭉 웃으며 내가 만든 부에 뭐 어쩔 거냐고 빈정대기 마련이었다.


    돌이켜보면 김각별의 그런 빈정거림이 힌트였던 게 아닐까. 모든 게 농담이었다는 하나의 신호. 정공룡은 경련하듯 씰룩이는 입꼬리를 억지로 벌려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다. 빠득빠득 갈리는 어금니와는 대조적인 행동이다. 졸업 전 마지막 연극이니 꼭 시간에 맞춰 대본을 받으러 오라고, 그러지 않으면 무대는 이인극에서 일인극으로 바뀔 거라고. 잔뜩 겁을 주었던 무심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런데 다 구라였다 이거지. 내가 이거 받으려고 아침 댓바람부터 등교했는데.


    정공룡은 대본인 척하는 괘씸한 A4 용지 더미를 둥글게 말아 구겨 쥔다. 마음이 상한 건 아니었다. 김각별과는 처음 만난 날부터 대체로 투닥거리며 서로 엿 좀 먹이고 하는 사이였으니까. 그러나 기분과는 별개로 받을 대본이 부실에 있다는 건 여전하다. 정공룡은 벽에 붙은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 교실을 나선다. 조례까진 시간이 넉넉하니 여유롭게 다녀와도 될 것이다.


    계단 앞 복도에서 마주친 황수현은 텀블러와 텀블러 뚜껑을 들고 식수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정공룡은 순간 황수현에게 ‘네 대본도 이 모양이냐’ 물으려다가, 가까스로 질문을 삼킨다. 그랬으면 황수현이 여기서 태평하게 물이나 뜨고 있진 않았을 테다. 팔을 걷어붙이고 당장 부실로 쳐들어갔겠지.


    졸업 연극에 대해서만큼은 3학년 세 명 중 황수현이 가장 극성이었다.


    서라더가 연극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했던 건 지난 늦봄의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정공룡이 막 얼떨떨해지려는 참에, 황수현은 유독 절박해져 일그러진 얼굴로 열을 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너는 전부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나한테 잔인해야겠냐고. 남들은 알아먹지도 못한 문장에서 과연 무엇을 느꼈는지. 서라더는 잠시 입술을 짓씹다가, 객석에서 카메라를 잡는 것으로 합의점을 제시했다. 원래는 후배인 박덕개가 할 몫을 자처하며 무대에 오르는 일만큼은 한사코 거절한 것이다. 양쪽 모두 합의된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그 후 두 사람은 냉전에 들어갔다.


    싸운 게 아니라 화해도 못 시키는데 쌀쌀한 기류만 남아 주변 사람을, 주로 정공룡을 껄끄럽게 만들었다. 화려한 조명이나 장치 없이 부실에서 그들끼리 진행하는 조촐한 놀이 따위가 다 뭐라고. 세상만사 제일 중요한 일인 양 신경전이었다.


    서라더의 불참 선언 이후 황수현은 평상시에도 졸업식보다 졸업식 전날인 그날을 더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서라더 본인은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부실에 들르는 횟수가 노골적으로 줄어들었다. 사태가 반년 넘게 지속되자 부원들은 그런 모습들을 천천히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정공룡은 뒤늦게나마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골의 원인을 짐작했으나, 끼어들 여지가 없어 답답하기만 한 노릇이었다.


    부 활동 시간이면 정공룡의 시선은 자꾸만 황수현과 김각별과 비어있는 서라더의 자리를 오고 갔다.


    “어디 가?”
    “부실.”
    “거긴 왜? 뭐 두고 왔어?”
    “어. 엄청 중요한 거.”

    황수현은 미지근한 얼굴로 그렇구나, 하며 계단을 오르는 정공룡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할 말이 있나 싶어 걸음을 늦추면 계단참에서 커브를 돌자마자 망설이는 듯한 어음이 정공룡을 붙잡는다. “공룡아.”

    “엄청 중요한 게 나중에는 사소해지기도 할까?”
    “언젠가는 그렇겠지? 그래도 계속 중요하긴 할 거야.”
    “왜? 사소한 건 꼭 잊어버리게 되잖아.”
    “그게 중요했다는 건 못 잊을 테니까.”


    정공룡은 황수현의 등색 눈동자에서 김각별을 연상한다. 밝은 계열의 홍채가 역광 속에 어둑하게 가라앉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눈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수조에 푼 물감처럼 흐리게만 느껴져서일까. 황수현이 조용해지자 복도가 적막해진다. 정공룡은 계단을 두세 칸씩 껑충 뛰어오르며 속도를 높인다. 층과 층, 좁은 틈 사이로 얼핏 보인 황수현의 발은 여전히 정공룡을 향해 멈춰있다.


    본관 5층 왼쪽 복도 맨 끝에는 연극부 청춘의 부실이 있다. 다목적실로 쓰이다 방치된 빈 교실을 김각별이 얻어온 거라고 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나 그곳에 존재했다. 아침이나 낮이나. 해가 뜨나 지나. 모두가 등교하거나 하교하거나. 넓은 창가에서도 중앙,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자세로. 느슨하게 입매를 비틀며 창을 등지고 부원들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그런 장면이 별스럽지 않고 당연했는데, 진상을 얼추 아는 지금이야 기묘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기묘하다. 그 공간은 기묘하다. 청춘은 기묘하다.
    김각별은 기묘하다.
 

    정공룡은 닫혀있는 문 앞에 잠시 멈췄다가 불시에 손잡이를 잡아 돌린다. 노란 마카로 ‘청춘’이라고 시원스럽게 휘갈긴 하늘색 종이가 상단에 붙어있는 오래된 나무 문이 삐걱삐걱 앓으며 뒤로 밀린다. 평소대로 너머에 있던 김각별이 태연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는 창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어깨에 둘러멘 담요 매듭을 정리하고 있었다. 행동만 제외하면 아침에 그들이 대본을 받고 떠났을 때와 똑같은 그림이었다.

    뭐야. 조금 있으면 조례 시작할 시간 아니냐?
    “아 받을 게 좀 있어서.”
    받을 거?
    “내 대본이요. 다 알았으니까 이제 줘요.”


    김각별이 덤덤하게 답했다. 아까 줬잖아. 정공룡은 미간 사이를 좁히며 부실 안으로 성큼 들어간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앞 책상까지 다가가 들고 온 종이 뭉치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이게 무슨 대본이에요? 장난치지 말고 진짜 내놔요.”
    그거 밤새 고민해서 만든 건데. 너 지금 내 대본 무시했냐?
    “고민은 무슨, 내용을 꿀이랑 같이 말아 먹은 것 같더만.”
    개꿀이긴 했지. 그래도 난 줄 거 없어.
    “아니 이걸로 뭐 어쩌라는 건데요. 황수현 대사 치는데 나는 옆에서 프리스타일 랩이라도 하라고?”
    하고 싶으면 해. 영상도 남는데 나중에 아주 볼만하겠다.
    “미친 빨리 대본 줘요! 대사도 모르는데 연극을 어떻게 해!”
    전통이라니까, 전통.


    뒷골이 당긴다. 막 지은 전통 따위가 김각별의 좋은 무기로 변해 있었다. 그는 제대로 된 대본은커녕 단어 뒤에 숨어 딴청만 거하게 늘였고, 시간이 지나도 정공룡 입만 아픈 입씨름이 한참 지속된다. 장난이라기엔 정도가 심하다. 그러니까, 화딱지는 그렇다 치고 수지가 맞지 않는다. 청춘에 졸업 연극이라는 걸 처음 들인 사람이 저기 있는 얄미운 김각별인데, 지금 정공룡 하나 골탕 먹이겠다고 제 손으로 극을 망치려는 게 아무래도 찜찜하다. 정공룡은 헛웃음 치기를 멈춘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발화를 삼키며 머리를 굴린다. 되지도 않는 전통이 생긴 이유. 빈 대본은 무엇을 목적으로 태어났는가.


    정공룡이 김각별을 똑바로 마주한다. 김각별은 무관한 태도로 정공룡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에 담긴 불가사의한 침묵이 며칠 전 비슷한 장면을 현재로 불러왔다. 어둠에 잠겨 색을 잃은 노랑이 김각별의 평온한 낯짝 위로 겹친다. 편집된 과거의 한 조각. 노을조차 빠져나간 무채색 부실과 도무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종용했던, 겨울 음영 속의 그 눈이.


    -황수현이랑 서라더 중에 한 사람만 골라야 한다면, 넌 어쩔래?
‘엄청 중요한 게 나중에는 사소해지기도 할까?’


    공룡아, 하는 부름 뒤로 밀려왔던 뜬금없는 질문들은 하필 이 순간 연속으로 부상한다. 언제까지 나는 김각별과 황수현을 동시에 떠올리게 될까. 불투명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정공룡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어 묻는다. “이것도 그때 그 말이랑 관련된 거예요?”


    김각별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공간이 어그러졌다. 그가 차지한 창가부터 시작해 부실 전체가 경계를 잃고 울렁거렸다. 색채가 주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혹은 위로 선을 그려 흘러내렸다. 사물과 배경이 아무렇게나 녹은 초콜릿으로 변해 정공룡을 끌어당겼다. 호흡을 잊어 정공룡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흐르는 세상을 수복하며 김각별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가, 말았다가.
 

    어느 순간 무대는 다시 선명해진다.

     네 대사는 그날 알게 될 거야.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에 열여덟은 아직 서툰 시절이었다. 실수가 쉬우니 겁도 쉽게 먹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선 어떤 동작도 빠짐없이 낙인으로 남았다. 딱 한 발, 박잠뜰이 뒤로 물러선 찰나. 김각별의 목소리는 뜻을 전하지 못해 구름을 타고 멀리 흘러갔다.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다신 듣지 못할 곳으로.


    잠뜰아. 차라리 여기서 다 멈춰버리자.
 

    멀리.)

    그날은 2월의 겨울이었다. 그들이 아직 2학년으로 분류되고, 막 나온 3학년 반 배정표를 비교하며 다가올 수험생활을 걱정했던. 멀지만 멀지 않은 지난날. 황수현은 알고 지낸 몇몇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학교로 찾아갔었다.


    교문을 지났을 때 시간은 이미 정오에 가까워 있었다. “내일 꽃 준비해서 갈게요.” 지난밤 다정하게 건넸던 문장이 무색하게 황수현은 졸업식에 지각을 했다. 깨고부터 내내 찌뿌둥했던 몸 때문에 행동이 굼뜬 탓이었다. 황수현은 바쁘게 울려오는 핸드폰을 무시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강당 앞에 도착하니 역시나 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참이라. 거기까지 갔음에도 들어가기가 머쓱해 애먼 걸음이 주변을 서성였다. 황수현이 그 소리를 감지한 건 문 주위에 모여든 인파를 피해 운동장으로 등을 돌린 순간이었다.


    강당 문은 늦게 온 사람들을 배려해 활짝 열려 있었다. 들어오지 못한 학부모를 위해 학교가 설치한 몇 없는 안배였다. 따라서 마이크를 통해 퍼져 나온 교장인지 교감인지 모를 선생님의 지긋한 인사말은, 문턱을 타고 기어 나와 황수현의 등을 건드릴 수 있었다.

    음파에 밀린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들었다기보다 닿았다는 게 옳은 표현일 감각. 황수현은 멈춰있음에도 어딘가에 밀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길고 짙고 어두운 강하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더니, 공기 중 울려 퍼진 단어에 섞여 멀미를 불러왔다.

    졸업을, 자랑스러운, 이제, 사회에, 어른이, 나아가서, 나아가서, 나아가서. …나아가면?


    우둑.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황수현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양손으로 붙잡은 꽃다발의 줄기가 금방이라도 꺾일 듯 위태롭게 휘어 있었다. 황수현은 손에 힘을 풀고 무작정 걸었다. 감각을 잃어 얼얼해진 귓바퀴를 장갑 낀 손으로 문지르며 되는대로 학교를 배회했다. 겨울의 시린 바람이 뺨을 아프게 할퀴고 지나갔다. 오갈 데 없는 발길은 결국 익숙한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그 와중에 찬 바람 좀 맞았다고 정신이 들어 꽁꽁 언 손가락으로 정공룡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학교 안에 있을게. 끝나면 전화해.


    벗은 장갑에 헝클어진 꽃다발까지. 뭐 들고 있는 게 그렇게 많아 화면을 만지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정공룡 옆에 서라더가 있을 테니 문자를 두 번 보내는 수고는 덜었다. 황수현은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핸드폰을 꺼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득달같이 울리는 주머니 속 진동을 모른 체하며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대충 알았다는 답장일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방금은 뭐였을까. 떠나는 게 외롭고 두려울 만큼, 내가 선배들을 그렇게나 좋아했던가. 황수현은 줄기 부분이 약간 휘고 포장지가 흐트러진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5층까지 올라가는 짧은 시간, 답을 내리진 못했으나. 고요한 학교를 느리게 울리는 발소리가 온화한 심장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속아 위화감을 잊으면 세상은 충분하고 풍족하게만 돌아갔다.


    부실 문은 미세한 틈을 두고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내부에서 히터 공기가 빠져나와 복도에 미약한 훈기를 풍겼다. 이러면 안에는 찬 공기가 들어가서 추울 텐데. 황수현은 무심코 생각하며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려 있는 걸로 보아 누군가 안에 있겠거니 싶었지만, 오늘 같은 날 그 누가 여기에 방문한다는 사실이 믿기가 어려웠다. 황수현이 반가움 반 의구심 반으로 고민하고 있으면 익숙한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혹시 귀신이에요?”


 서라더였다. 서라더가 불신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무슨 말이건 요만큼이라도 거짓을 풍긴다면 절대 믿지 않겠다는 의지가 투철하게 깃든 어투였다.


    그런데 귀신이라니. 황수현은 서라더가 누군가와 다툰다는 사실을 뛰어넘어 그 황당한 내용에 마음을 홀렸다. 서라더가 귀신을 믿었던가. 관심 있다고 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황수현은 조금 망설이다가 살포시 귀를 문에 붙였다. 대화를 엿듣는 행위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비밀스러운 일이었으면 다른 데에서 이야기했어야지. 난 달리 갈 곳도 없는데.


    서라더의 대화 상대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귀신은 아니야.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수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황당한 질문을 받고도 태연히 받아친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각별이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터지려는 의문을 목구멍 너머로 밀어냈다. 황수현은 귀를 더 바짝 기울였다. 귀신이건 김각별이건, 서라더의 비밀은 서라더 개인만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장막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죽은 적이 없으니까.
    “죽었는데 모르는 건 아니고요?”
    어제 걔가 나 만나러 온 거 봤잖아. 내가 죽었으면 날 보러 학교를 왜 와.
    “못 올 건 없지 않나. 어쨌든 그쪽은 여기 있잖아요.”
    그래도 추모를 하려면 뼈가 안치된 곳으로 갔겠지. 하지만 난 무덤이 없어.
    “왜요?”
    살아있어서.
 

    짧게 침묵이 흘렀다. 서라더가 다시 질문했다. “왜 졸업 안 하세요? 죽은 것도 아니라면서.”
 

    그냥.
    “그냥?”
    더 좋을 일도 나쁠 일도 없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역하기만 하니까.
 

    “고작 그런 걸로?” 서라더가 거의 반사적으로 물었다. 김각별도 튀어나오는 말로 답했다. 고작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미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본 사람 같았다.

    황수현은 무의식중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러니까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 숫자 하나가 바뀐다는 이유로 어른이 된다는 것. 우리가 서서히 서로를 잊어가리라는 것. 황수현은 그것들의 의미를 탐구할수록 크기를 불리며 치솟는 불안의 이름을, 아직 명명하지 못했다. 이름이 없으니 말로써 꺼내지 못하고 아등바등 울음만 삼킨 시간들. 찬란한 낮과 공허한 밤의 연속이 황수현을 지치게 했다. 이유를 물으면 어떠한 형태로도 답할 수 없는, 고작 그런 우울감이.


    그러자 황수현은 마침내 김각별이 왜 서라더에게 저런 질문을 받고 있는지 이해했다.


    여태껏 누구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은, 거대하지만 보잘것없는 진실. 시간이 김각별을 비껴가고 학교가 그 존재를 묵인했다. 다시 말해 유령인 것이다. 불안에 사로잡혀 기어코 발을 멈춘 유령이 김각별의 정체였다.


    진실을 마주한 황수현은 김각별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 순리를 뒤흔든 이물적인 존재. 안타까우나 또한 부러운, 미지의 영원. 곧 그렇게 생각한 자신마저도 혐오스러워져, 황수현은 손바닥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서라더가 말했다. 김각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보니까 누나는 선배를 보지도 못하는 것 같던데.” 김각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선배가 여기에 계속 남아있는 거랑 뭔가 관련이 있는 거죠.” 김각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이고 고여서 누군가에겐 보이지도 않게 되는 삶이, 아까 말한 나이 먹는 일이랑 뭐 그렇게 다른 건지…… 저는 정말 모르겠거든요.”


    “그러니까.”


    김각별은.


    “……선배?” 서라더의 당황한 목소리가 떨리어 울렸다. 김각별이 대답했다. 라더야.


    “어디 갔어요? 뭐야?”


    난 여기에 있어.


    “도망친 거예요?”


    어쩌면.


    “이런 식으로?”


    …그래. 이런 식으로.


    김각별의 건조한 목소리는 서라더한테만 무음으로 바뀌어 귀에 닿기 전에 흩어졌다. 서라더는 그걸 알면서도 김각별을 찾아 부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름과 응답이 삐거덕대며 연속이었다. 황수현은 두 사람이 내는 소란스러운 불통을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것이 김각별이 세상에 내놓은 대가가 아닐까. 어지럽힌 순리를 보상하는 값으로 존재의 무게 정도는 꽤나 싼 편이겠지만.


    졸업식이 끝났는지 정공룡이 서라더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만나기로 한 두 사람에게 연이어 바람맞은 정공룡은 짜증이 잔뜩 올라 있었다. 짧은 실랑이 끝에 서라더는 한숨을 내쉬며 통화를 종료했다. 황수현의 핸드폰에도 진동이 울렸다. 받을까, 하는 고민도 없이 망연한 사이 서라더가 벌컥 문을 당겨 열었다. 마지못해 부실을 떠나려던 서라더의 시야에 황수현의 검은 정수리가 불쑥 들어왔다. 서라더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너 뭐 해?”


    황수현은 문에 붙느라 굽혔던 허리를 어정쩡하게 펴내며 서라더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봤다. 유령의 노란 눈동자가 찬연한 하늘을 등지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왔냐. 그 말을 듣자 황수현은 내밀히 재어둔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입을 열었다. “선배.” 서라더가 당혹감에 급히 황수현을 불렀다. “잠깐만 수현아.” 잠깐만, 이라고 말했으면서 서라더는 황수현이 다음 말을 이을 때까지 어떤 문장도 꺼내지 못하고 입술만 뻐끔거렸다. 직감이 인식보다 빠르게 당도해 말문을 막았다.


    “어떻게 하면 선배처럼 될 수 있어요?”
    “야.”
    “방법이 있는 거죠?”
    “하지 마.”
    “알려주세요. 저도.”
    “수현아, 제발.”
    김각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서라더는 황수현의 어깨를 잡아끌어 복도로 나갔다. 쥐고 있던 꽃다발을 바닥에 떨어트리면서도 황수현은 김각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고정된 활로가 풍기는 집요하고 불길한 기운을 떨치려, 서라더도 뒤편을 흘끔거렸다.


    그러나 돌아간 방향의 끝은 황망히 허공이어서. 서라더는 황수현의 목적지에 닿을 수 없었다. 닿지 못하니 막을 수도 없어 그저 앞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박잠뜰이 객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후배를 통해 미리 알아둔 김각별의 자리였다. 미련과 사과를 담아 간절히 내밀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연극은 씁쓸한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녹화분 역시 덩그러니 남은 손바닥을 끝으로 검은 화면에 넘어갔다. 소품 담당이 건넨 카메라의 내용물을 확인하며, 박잠뜰은 말했다.


    ‘저장하지 마. 이건 미완성이야.’)





    가장 먼저 주의를 끈 건 노란 프리지아가 만개한 꽃다발이었다. 부드러운 재질의 하늘색 포장지로 감싸여, 고급진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묶인 꽃다발. 박잠뜰이 그걸 손에 들고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박잠뜰에게 다가가며 서라더는 어쩔 도리 없이 부실 문에 부착된 색 바랜 종이 한 장을 떠올렸다. 노란 글씨로 ‘청춘’이라 소담하게 쓰인 하늘색 종이는 저 꽃다발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으므로. 그러고 보면 그 종이도 박잠뜰이 찾아온 거라고, 언젠가 김각별이 언급한 적이 있었더랬다. 서라더는 슬며시 웃음 지었다. 특이하면서도 여전한 조합이 이제는 청춘의 상징과 같이 느껴졌다.


    “누나. 안녕하세요.”
    “어, 라더야. 오랜만이다. 이제 가? 너희 선배들은 아까 나오던데.”
    “네. 뒷정리 좀 하느라요.”
    “네가? 걔네한테 치우고 가라 하지 그랬어.”
    “마지막이잖아요. 그런데 어쩐 일이에요?”


    박잠뜰은 그냥, 하며 학교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돌렸다. 누굴 기다리는구나. 곧장 예상이 갔으나, 말하기엔 불편하다는 비언어적 표현 역시 빠르게 읽은 서라더가 눈치껏 화두를 돌렸다. 마침 바스락거린 꽃다발의 포장지로 관심을 옮겨 “그 꽃은 뭐예요?” 묻자, 그러나 이번에도 약간은 껄끄러운 질문이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루뭉술한 응답이 돌아왔다. “누구 좀 주려고.” 서라더는 어색하게 식은 공기에 괜히 목덜미를 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잠뜰과 함께 있는 시간이 서먹해지는 경험은 서라더에게 다소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한 번도 이런 식의 침묵을 견뎌본 적이 없었다. 작년 이맘때, 박잠뜰이 실패한 연극을 뒤로 남기고 졸업해버리기 전까지는. 1년 만의 만남이 그들을 완전히 바꿔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고 씁쓸하기만 했다.


    “…그나저나 수현이랑 공룡이가 안 보이네.” 박잠뜰이 말했다.


    “셋이 맨날 붙어 다니더니. 걔네도 먼저 간 거야?”
    “수현이는 학원 갔고 공룡이는 집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갔어요.”
    “그럼 너 혼자 고생했겠네.”
    “아뇨. 각별 선배도 있었는데요, 뭐. 중간까진 덕개도 있었고.”
    “아. 그랬구나…….”


    움츠러든 말끝이 분위기를 위축시켰다. 서라더는 혓바닥으로 입천장을 누르며 나오려는 끙 소리를 억눌렀다. 박잠뜰의 입꼬리는 형상기억합금으로 변해 어느 지점마다 일자로 돌아가고 있었다. 왜 자꾸 대화가 헛돌지. 이유가 있을 텐데.


    박잠뜰은 꽃다발을 고쳐 쥐었다. 찬 공기가 손바닥과 포장지 사이로 스며들어 땀을 식혔다. 익숙한 서늘함에 시선이 학교인지 하늘인지 허공인지 모를 멀고 높은 어딘가를 쫓았다. 큼, 하고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이제 너희도 3학년이구나. 내가 너희 처음 만난 게 1학년 때인데.”


    박잠뜰이 슬쩍 웃으며 서라더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지. 해가 벌써 지려고 해.”
    “겨울이라 그런가 봐요.”
    “그래. 겨울이라…… 빨리 가 봐. 부모님 걱정하실라.”
    “네. …누나도 추운데 어디 들어가서 기다려요. 이런 데 말고.”
    “오냐. 알았다.”


    집으로 가는 길, 서라더는 오래도록 곱씹어 박잠뜰을 생각했다. 박잠뜰이 건네 온 노련하고 온기 있는 언어를 기억했다.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의 형상을 그려냈다. 그러다 문득, 그런 꽃다발이라면 연극부원 중 누군가의 것이겠구나, 하며. 학교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김각별이 노란 프리지아의 주인임을 깨달았다. 학기 중도 아닌 졸업식 하루 전, 사람이란 기껏해야 식을 준비하는 학생회와 방송부밖에 없을 삭막한 학교에. 따로 모여 활동하는 연극부가 아니면 박잠뜰이 만날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그런 꽃다발을 김각별이 아니고서야 달리 누구한테 준다고. 그렇게 노랗고 푸른 꽃다발을, 어느 누가 봐도 청춘의 문짝인 물건을.


    
그러나 계속해서 헷갈리고 의심이 드는 건 김각별에겐 꽃다발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라더 생각에 꽃다발은 선물쯤으로 보였는데, 2월 초의 선물이란 물론 졸업 선물이겠지만, 김각별의 졸업 시기는 올해가 아니었다. 당장 이번 해 동아리 활동만 해도 김각별이 부장으로 내정돼 있었으므로. 인수인계 같은 내부적 조정 사항을 넘어 부장 없는 동아리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서라더는 쓰읍,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졸업 말고 개인적으로 꽃다발을 선물할 일이 뭐가 있지. 졸업 말고, 졸업 말고…….

    기시감이 어쩌다 걸린 돌멩이처럼 발을 걸었다. 서라더는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언제 졸업하더라.”


    설마 나랑 같이 졸업하나. 내년에. 아니지. 그 선배 졸업하면 부장은 누가 하고. 아니지. 평생 동아리 부장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아니지. 그런데 나 1학년 때도 그 선배가 부장 아니었나. 아니지. 어쩌면 그전에도. 아니지. 내년에도. 아니지. 평생. 아니. 아니야. 아니지. 아니지.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한 가닥이 어긋나자 생각은 꼬리를 물어가며 이어졌다. 서라더의 사고는 긴 꼬리를 따라 누구도 숨기지 않은 배후 깊숙이로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애당초 박잠뜰이 열아홉일 시절 같은 열아홉이었던 김각별이, 해가 지나도 계속 계속 열아홉이라는 게. 전부 인식계의 기만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일까. 사람일까, 귀신일까.


    박잠뜰이 김각별을 추모하거나 위령하기 위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서라더는 본관 건물을 연신 흘낏거린 잠겨있던 눈빛을 단숨에 이해했다. 김각별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언젠가의 박잠뜰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우스갯소리. 쓸쓸하게 남겨진 손바닥.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 어떤 면에서든 박잠뜰은 김각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김각별만 제외하고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라더는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무언가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랬다간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의 기묘한 줄다리기에서, 두 발은 제 주인을 학교로 이끌었다. 뛰다시피 걸어 돌아온 교문 앞에 박잠뜰은 여전히 꽃다발을 들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라더야?” 멍청하니 선 서라더를 발견한 박잠뜰이 의아한 듯 서라더를 불렀으나, 붉은 눈동자는 부름을 비껴가 그 너머에 머물렀다. 박잠뜰이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다. “왜 다시 왔어?”


    서라더는 침묵했다. 김각별이 박잠뜰 바로 뒤에서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쉿,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하지 마.


    “선배.”


    박덕개의 부름이 서라더의 의식을 김각별로부터 끄집어낸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의 김각별, 기기묘묘한 괴담과의 첫 대면으로부터 건져 올렸다는 표현이 옳겠다. 최근 서라더는 김각별과 박잠뜰에 대해, 아니면 정공룡과 황수현 그리고 서라더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 늘었다. 한번 상념에 빠지면 집중을 잃고 멍해지기 일쑤에 길을 걷다가도 멈춰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를 헤집었다. 주변에서는 갑자기 이상스레 행동하는 서라더를 염려했으나, 서라더 본인이야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대충 졸업이 다가와서 그렇다며 변명했다. 반쯤은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상념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서라더는 객석으로 지정된 복도 쪽 의자 세 개 중 가운데에 앉아 점검하던 카메라를 재차 들여다본다. 책상과 교탁과 기타 연극에 불필요한 장비를 모조리 뒤편으로 몰아놓고, 의자 두 개만 창가에 덩그러니 남긴 부실의 단면. 커튼을 활짝 걷어 범람하는 푸른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인 카메라 속 풍경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그림을 닮아있다. 저곳이 정공룡과 황수현이 올라갈 마지막 무대이다. 마지막이어야 하는, 무대이다.


    “괜찮아요?” 박덕개가 묻는다. 서라더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턱짓한다. “괜찮아.”


    “각별 선배가 곧 시작이라고 카메라 세팅 끝났냐는데요.”

    “어. 끝났어. ……선배 어디 계시냐?”
    “바로 옆에 앉아있잖아요. 아무리 싸웠어도 대화는 좀 둘이 하면 안 돼요? 맨날 나 통해서 불편하게.”


    서라더는 비어있는 옆자리를 무표정한 낯으로 내려다본다. 그러나 박덕개의 바람과는 다르게 김각별에겐 어떤 말도 건네지 않는다. 무슨 고민을 하든 닿지 않을 것이다. 김각별은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동으로 황수현의 창백한 얼굴이 김각별 이름 뒤에 떠오른다. 몇 번이고 찾아가 나눴던 대화 아닌 대화와 그때마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던 뒷모습까지. 악몽 같다.


    때마침 들려온 정공룡의 웃음은 상상에서마저 멀어진 황수현과의 간격을 간신히 채워낸다. 서라더는 한껏 그러안았던 긴장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다. 그래. 공룡이가 남았으니까. 내가 할 말은 뒤통수에 대고 이미 다 해버렸으니까. 도망칠 곳도 없는 이 무대에서 이제 서라더에게 남은 건 말이 아닌 행동이다. 김각별에겐 이미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서라더는 조용히 읊조린다. “전 선배한테 졸업 축하한다고 직접 들을 거예요. 수현이한테도요.”


    어느새인가 각각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정공룡과 황수현이 렌즈에 비친다. 드디어 그들의 차례였다. 김각별이나 박잠뜰, 혹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졸업.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위해 질질 끈 모든 과거를 되새기며 막이 오른다. 오후 세 시, 예정대로 해가 너무 뜨겁지 않은 시간에.





    (단 한 명이라도 무대에 남아 버틴다면 막은 내리지 않았다. 청춘이 이어졌다. 불멸하여, 불명하여, 불안의 이름으로. 다음은 어디에 있는가.


    김각별과 박잠뜰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2021년 2월 6일. 제3회 연극부 청춘 졸업 연극. 서늘하지만 햇볕이 따뜻함.


    박덕개는 검게 눌러쓴 글씨를 들여다본다. 김각별이 잠깐 가지고 있으라며 넘겨준 스프링 노트엔 그런 글씨가 줄을 지어 적혀 있다. 사실 그건 채워진 부분보다 공백이 더 많은 노트였다. 2016년 연극부 창설부터 2021년 올해까지 총 여섯 줄. 2020년에는 작년에 졸업한 선배들 이름이, 2019년에는 박잠뜰이라는 약간쯤 익숙한 석 자가 나열돼 있으므로 이번에는 2021년 줄에 세 개의 이름이 추가될 예정이다. 아마 내년에는 2022년 2월 며칠 박덕개 졸업, 하고 실감 없는 문장이 적히게 되겠지. 박덕개 입장으로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공룡과 황수현의 무대는 시작하고도 한참이 지났다. 고저 없는 흐름의 극이 막힘없이 진행됐다. 그들은 다섯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대놓고 앉은 관객들의 존재를 까먹은 사람들처럼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박덕개는 치밀하게 짜인 발화를 들으며, 카메라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서라더의 옆얼굴을 살핀다. 딱딱한 얼굴이 긴장에 덮여 드물게 질려있다. 겸사겸사 시야에 걸린 김각별의 무감각한 낯도 티 안 나게 스쳐보지만,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해 노트로 시선을 돌린다.


    마구잡이로 가려진 2018년 2월의 줄을 발견한다. 제1회, 라고 쓰고 붉은 실선으로 덧칠한 상처를 손끝으로 쓸어본다. 눈물이 말라붙은 자리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종이가 바스러지지 않도록. 완전히 가리지도,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두지도 못한 글자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박덕개는 연극이 시작하기 직전 김각별과 서라더가 나눈 대화를 알고 있다.

    ‘전 선배한테 졸업 축하한다고 직접 들을 거예요. 수현이한테도요.’
    -…욕심도 많다.


    “그날도 재밌었어. 네가 라더 몫 아이스크림까지 먹어버려서 둘이 싸운 날.”
    “서라더가 심했지. 그러고 집 가는 길에 두 배로 뜯어 갔잖아.”
    “네가 잘못했어. 무척 더운 여름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럴 줄 알았으면 라더 건 절대 안 먹는 건데.”
    “그럼 누구 아이스크림 먹었을 건데?”
    “덕개.”
    “인성 실화야?”
 
    진짜 실화야? 소리를 출력하려 움찔대는 입을 간신히 막는다. 대사라고 할까, 저건 이미 대화에 불과해 보여서. 배우도 아닌 박덕개가 무심코 끼어들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한편, 무대에 묻은 일상은 그들 세 사람의 3년을 마무리하는 이야기로 지극히 옳게 느껴졌으므로. 박덕개는 지루하면서도 흐뭇하다. 정공룡과 황수현도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초반 빳빳하게 펼쳤던 어깨를 구부리며 점점 편안하게 자세를 풀어갔다. 극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돌이켜보니 안 좋은 날이 없어.”
    “그땐 딱히 좋다고도 못 느꼈는데.”
    “맞아. 원래 다 지나고서야 알게 되나 봐.”
    “아쉬워?”
    “아쉬워. 잘 아니까 지금은 더 아껴줄 수 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다 끝이 있는 법이니까.”
 
    황수현이 허벅지에 올려둔 양손을 맞대어 깍지를 낀다. 정면에서 그 모습을 본 정공룡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딱 기울인다. 박덕개는 이유 모를 행동들이 떨어트린 온도를 피부로 느낀다. 날카로운 노트 모서리를 만지작거린다.


    “무섭지 않아?”
    “뭐가?”
    “끝이 있다는 게.”
    “무서울 일인가?”
    “아니면 졸업이 말이야. 어른이 되는 거라든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만약에 이 모든 일상을 끝없이 이어지게 할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할래?”

    무대 위 공기가 먹먹해진다. 아니, 사실은 부실 전체가. 황수현과 황수현 이전의 수많은 누군가를 헤매며 시간이 꼬여간다. “공룡아.” 황수현이 다정한 목소리를 자아낸다. 죽음처럼 가라앉은 등색 눈동자가 정공룡을 응시한다. 정공룡의 검은 눈은 일순 김각별을 향해 굴러갔다가 관성을 받아 다시 황수현에게로 미끄러진다.

    “어른이 되는 건, 솔직히 좀 무섭잖아.”

    괜히 한 번 부려보는 투정처럼 가볍게, 그러면서도 눈물을 닦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황수현이 내뱉은 가지 말자, 한 마디가 숨을 닮아 옅어졌다. 속삭임은 아득하게 멀어지며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박덕개의 온 이목이 황수현에게로 집중된다. 시선인지 마음인지가 전부 황수현이 앉은 의자 아래로 휘몰려 들어간다. 박덕개는 그 의자에 달린 네 개의 발과 거기에 닿은 지면을 고정된 머리로 정확하게 바라본다. 갖가지 이목을 게걸스럽게 삼킨 새까만 먹이 바닥을 타고 올라와 수묵화로 변해가는, 이질적인 현상을 대면한다. 혼란과 경악이 인지의 영역을 넘어 두려움을 끌고 온다. 도망치고 싶지만 주저앉아 울고 싶기도 한, 소름 끼치게 불온한 감각.

    박덕개는 간신히 목 근육을 움직여 옆을 본다. 서라더가 카메라에서 얼굴을 떼고 직접 황수현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조용히, 당장 튀어 나가려는 다리를 꾹 누르며 간간 정공룡을 확인하기도 한다. 김각별도 변치 않은 자세로 앉아 사태를 관망했다. 어지러운 분위기마저 정해진 연극이라는 양, 미리 알고 있던 재난에 기도하는 석상의 정신을 모방하여. 당황하고 겁먹은 사람은 박덕개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게 다 연극이라고? 정말로? 박덕개는 비명을 참는다. 에티켓이다.

    수십 분인지 몇 초인지가 지난 끝에 정공룡이 답한다. “싫은데.” 덤덤하고 장난스러우나 끝이 갈라진 대답. 정공룡은 목을 가다듬는다. 황수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속눈썹을 차양으로 내리깔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다가 그게 잘 되지 않아 조개로 변한 사람처럼, 마냥 그렇게 있었다.

    무언가 대꾸가 돌아오기도 전에 정공룡이 먼저 어깨를 으쓱인다. “같이 안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면 되잖아.” 황수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라고?

    “뭐가 뭐라고야. 원래 혼자 있으면 무서워도 사람 많으면 덜 무서운 거 몰라?”
    아니… 공룡아. 그 말이 아니잖아.
    “나한텐 그 말이었어. 같이 가.”
    공룡아.
    “라더랑, 나랑, 너랑…… 아니면 너 혼자 여기 있게?”
    너 지금 나 협박해?
    “이게 협박으로 느껴지면 네가 찔리는 게 있는 거지.”

    경직된 웃음과 함께 맥이 풀린다. 막혔던 숨을 몰아쉬고 박덕개가 눈을 끔뻑인다. 황수현은 머뭇거리며 정공룡과 서라더를 갈마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팽팽하게 붙잡고 있다고, 박덕개는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이 평생 함께 나이를 먹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누가 평생이래. 그건 나도 싫거든?”
    나는 뭐 좋아서 물어본 줄 알아? 화나게 하지 마.
    “아무튼 같이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까지만, 같이 있자는 거지.”
    이해가 안 돼? 세상은 그게 불가능하니까 힘든 거야.
    “가능할 수도 있어. 안 해봤잖아, 너.”
    공룡아. 너 내가 뭘 말하는지 알잖아. 왜 억지를 부려.
    “이럴 때 억지 부리려고 있는 게 친구니까.”

     황수현이 떨떠름하게 눈살을 모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오글거려. 정공룡의 미간도 와그작 구겨진다. “조용히 해.”

     가장자리가 번진 수묵화가 장면 너머로 스며 사라졌다. 박덕개는 눈을 비빈다. 황수현이 앉은 자리는 모든 게 환상이었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통해 평범한 의자와 바닥으로 돌아간다. 잠시 씩씩대고 나자 이질적이던 등색 눈동자가 환하게 빛나고 있다. 황수현은 직감에 경고등이 켜졌는지 돌연 설마, 하는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객석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라더를 향해 정확히 열린 눈길이 이어 김각별을 찾으려다가 무참히 허공을 스친다. 손바닥 뒤집듯, 가볍고 가벼이 뒤틀리는 오래된 변덕.

    정공룡이 다시금 황수현을 부른다. “수현아.” 부르고 깊게 심호흡하더니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야. 같이 가자.”

    황수현은 손에 얼굴을 묻는다. 막 잠이 깨 빛에 적응하려는 오전처럼 오래 그렇게 있다가, 피곤한 음성을 손밖으로 내보낸다.

    “……공룡아.”
    “엉? 어. 왜. 혹시 우는 건 아니지?”
    “넌 나중에 나이 들어도 대본은 쓰지 마. 대사가 구려.”
    “지금 시비 걸었냐? …수현아, 너 진짜 울어?”
    “안 울어. 근데 이제 우리 대본은 누가 써주지. 이런 뻔한 대사로 우리끼리, 우리만 가는데.”

    정공룡이 객석을 돌아봤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낯을 굳힌다. 찰나의 눈길마저 김각별이 아니라 김각별의 자리에 박히고 만다. 이는 혹 순례라도 되는지. 박덕개는 세 사람분의 각기 다른 눈동자가 사람이 아닌 사물에 머무르다 떠난 광경을 차례로 곱씹는다. 김각별은 언젠가 반드시 외면받는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김각별이 저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거나.

    앉아있던 의자를 끌고 정공룡이 황수현 곁으로 간다. 서라더도 카메라를 내버려 두고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남아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이후의 이야기를 한다. 할 말이 바닥나 고요가 찾아들 때까지 막아둔 둑을 틀어 부족한 시간을 메운다. 박덕개는 이 연극에 막이 내렸음을 인지한다. 완벽하지 않아 울다가, 그나마라도 그러쥐어 웃는 세 사람. 완성이구나. 상체를 기울여 녹화를 대신 종료해준다. 김각별은 다만 여전히 자리에 앉아 커튼콜을 관람하고 있었다.

    박덕개는 허벅지 위에 노트를 펼친다. 볼펜을 달칵 눌러 심을 빼고 둥그런 글씨로 김각별을 대신해 기록한다.

    2021년 2월 6일. 제3회 연극부 청춘 졸업 연극. 서늘하지만 햇볕이 따뜻함.
   서라더 정공룡 황수현, 졸업.

    너도 가도 된다니까.
    “원래 제가 할 일이잖아요.”
    치울 것도 없어. 그냥 가.
    “없기는, 책상이 한 바가진데. 일손 있을 때 받으세요, 어르신.”
    어르신 무슨.

    놀리는 말투로 웃으며 책상을 옮기던 박덕개가 창가에 멈춰 선다. 졸업생 세 사람은 운동장을 넘어 도란도란 걷고 있다. 안 그래도 같이 치우겠다는 걸 억지로 보낸 참이었다. 김각별은 박덕개도 보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박덕개는 저 사이에 끼어 걸을 자신이 없었다. 시원섭섭하고 우울하면서 밝은 얼굴들. 모순된 표현이 덕지덕지 붙은 사이에서 박덕개는 완벽하게 타인이다.

    “어르신.”
    왜.
    “졸업 연극, 혹시 저랑 같이 해요?”
    몰라.
    “에이…… 그럼 올해 3학년 더 안 들어오면 전 혼자 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마도. 일인극도 나쁘진 않아. 우리 부에 그런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외롭잖아요. 홀로 무대에 서는 건.”
    그럴까.
    “그렇죠.”

    삐뚤빼뚤 옮겨둔 책상 줄을 맞추기 시작하자, 김각별은 이미 창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박덕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엷은 역광에 휩싸인 뒷모습을 바라본다. 노란 별 장식이 달린 머리끈이 눈에 들어온다. 청춘의 글씨체와 닮은 말갛고 병적인 색깔. 박덕개는 흐려지려는 색을 뚫어지라 붙들며 그를 부른다.

    “선배.”
    또 뭐.
    “청춘이요. 왜 하필 청춘이에요?”
    이젠 이름까지 불만이야?
    “그게 아니라. 원래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보고도 흔히 청춘이라고 부르잖아요. 젊기만 하면 곧 죽어도 청춘인 게 세상인데, 하필 우리 부 이름이 그거일 이유가 있나 해서.”

    김각별이 뒤를 돌아보려다 말고 몸을 굳혔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곧게 펴지는 등을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헐겁게 흔들렸다. 그는 창틀에 기댔던 팔꿈치가 시린지 잠시 문지르다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땐 다 끝인 것 같았나 보지.




    (김각별은 박잠뜰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졸업 후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후배가 하필 이 시기에 찾아와 말없이 농성이었다. 차라리 직접 끌어내겠다고 쳐들어왔으면 꼭꼭 숨고 끝날 일이었지만, 영악한 박잠뜰은 교문을 선으로 바깥에만 있었다. 무대 아래에 다리를 묶어놓고 김각별을 유인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당신의 청춘이 끝나지 않는다면, 나도 영원히 청춘에 남아있을 거라고.

    너는 참 미련하고 욕심이 많아.

    김각별은 기가 차 웃고 말았다.)




    작년과 똑같은 노랗고 파란 꽃다발에 한 번. 갈색의 동그란 뒤통수에 한 번. 샛노란 홍채가 햇빛을 반사하며 움직인다. 빠르게 지는 겨울 해의 이른 끝자락이 붉었으나, 고개를 꺾어 올리면 아직도 아득하게 파랑인 하늘이 눈에 담긴다. 몇 년 전엔 저게 너무 넓어서 겁이 났더랬다. 손바닥으로 가릴 수가 없어서…….

    한 걸음. 고개를 내린 김각별이 발을 뗀다. 하얀 교복 와이셔츠 위로 싸맨 담요가 바람에 흔들린다. 외투는 옛 교실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라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막을 건 얇은 요 하나가 전부다. 시간이 돌자 감각도 돌아와 추위가 몰려든다. 절로 굽어드는 몸을 신경 써서 펴낸다. 인기척이 났는지 박잠뜰의 등이 움찔거린다. 꽃다발을 바스락거리며 뒤를 돌아본다. 김각별은 홀로 자주 삼켰던 이름을 부른다. “박잠뜰.” 노을이 만든 음각에 선명해진 목소리. 있어야 할 곳에 원래 있었다는 양 태평하고도 낮은 어음으로.

    김각별은 뒤늦게나마 전해야 했던 말을 전한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