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님 (@000_siriusbeta)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는 풍경과 인물을 담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사진을 나중에 꺼내어 보았을 때 그 날의 추억을 쉽게 회상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영원히 볼 수 있도록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 그를 가장 매료시켰다. 노을이 질 때, 하늘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바뀐다. 처음에는 옅은 파란색, 그러고는 주홍빛, 분홍빛, 그리고 보랏빛이 서로 뒤섞이고 마침내는 해가 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면서 어두운 남색에서 하얀 빛을 내뿜는 별들만이 빛나는 칠흙같은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렇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라져버릴 색깔과 광경을 카메라로 담고 그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이, 수현을 사진에 매료시켰다.
“음.. 여명고 사진부에 온걸 환영해! 나는 사진부의 부장 수현이야.” 수현은 활짝 웃으며 부원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사진부실 내는 여느 다른 반들처럼 적당한 크기였으나, 사진부실 내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아 훨씬 커보였다. “나는 라더라고 해. 수현이 친구야.” 붉은색 머리를 하고 앉아있던 부원이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곧이어 공룡 모양 후드를 입은 학생도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공룡이야, 이번에 전학왔어. 잘 부탁해.” 공룡은 아직은 어색한 듯 웃었다. “좋아, 그러면 우리 사진부에서 뭘 할지를 알려줄게. 이름부터가 사진부이니 잘 알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학교 내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닐거야. 그러면서 사진의 요소들도 좀 배우고. 매주 써서 낼 내용은 있어야하니까. 그리고.. 아, 2학기 말에 사진전을 열거야. 축제 부스를 연다고 생각하면 편해. 그래서 열심히 찍으러 다니면 되고. 음.. 이정도면 된 것 같아.” 살짝 열어놓은 창 사이로는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그러면.. 질문 있어?” “아니.” “라더 너한테는 안 물어봤단다ㅎㅎ” “나도 없어.” “좋아, 그럼 시간이 한 1교시 정도 남았으니까, 사진 찍으러 갈래? 원래 첫 시간에는 교내를 돌아다녀. 꽃도 좀 피는 시기고 하니까. 나중에 꽃 사진은 한번 더 찍으러 갈거야.” “그래, 나가자.”
바깥은 이제 진짜로 봄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개나리가 만개했고 목련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디 먼저 갈래?” “글세, 저기 목련나무는 어때?” “오 좋다, 그러면 저기 먼저 가자.” 목련나무는 여명고의 서관 옆에 하얀 꽃들을 꽃봉오리에서 틔우며 서있었다. 바람이 불자 목련나무에서 목련잎은 하나둘씩 조금씩 떨어졌고, 수현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필름에 담았다. “진짜 예쁘다.. 공룡아, 너 포즈 좀 취해줄 수 있어? 그냥 아무 포즈나.” “어? 그래~ 뭐.. 이렇게?” 공룡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어, 딱 좋아.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하며 라더의 핸드폰에서 소리가 났다. “어때? 잘 나왔어?” “응, 잘 나왔네. 고마워.” “응, 근데 수현이는 진짜 신났네.” “쟤가 원체 사진 찍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꽃도 진짜 좋아하거든.” 공룡의 말대로 수현은 신이 나서 목련나무와 그 옆 화단에 있는 개나리와 이름 모를 작은 꽃들도 찍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 철쭉 진짜 예뻐! 이리 와서 봐봐.” “그래, 간다~” 공룡과 라더는 웃으며 수현에게 다가갔고 바람이 불어, 목련의 가지를 흔들리게 했다. 교내가 개나리와 목련의 꽃향기로 가득 퍼진 듯 했다.
“라더야, 매점 갈래?” 공룡은 라더의 자리로 달려와 물어봤다. 첫 동아리 시간 이후로 같은 반인 라더와 공룡은 친해졌고, 수현 역시 같이 놀러다녀 셋은 꽤나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래, 수현이랑 같이 가자.” 공룡과 라더는 바로 옆반인 수현의 반으로 가 수현에게 매점을 같이 가자 했고, 셋은 매점에 가 피크닉을 하나씩 손에 들고 나왔다. “야.. 하늘 진짜 예쁘다.” “그러게, 되게 맑다.” “아.. 사진 찍고 싶다.” 공룡은 창틀에 기대어서서, 라더와 수현은 책상 위에 앉아 하늘을 봤다. 이제 진짜 봄이 왔다는 듯이, 하늘은 맑고 청명했으며 중간중간 흘러가는 구름도 보였다. “쌤한테 허락 못 맡았어? 몰래 폰 쓰는 애들도 많던데. 그냥 대충 둘러대면 됐을텐데, 동아리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공룡은 그러면서 피크닉을 한 모금 마셨다. “전에 허락을 구하려고 물어보기는 했었는데, 안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어.” 수현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사진 찍는 시늉을 했다. “그래, 뭐. 그런건 허락을 받기가 좀 어렵긴 하지.” 아무 말 없이 피크닉만 마시고 있던 라더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수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고, 하늘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반 아이들의 수다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나날이 시간이 흘러갔고, 어느새 다음 동아리 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교외로 나가볼거야. 길가도 다니고, 시간이 좀 남으면 저쪽에 있는 작은 산도 가보고. 목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사진을 찍어보는거랄까. 그럼, 가자!” 수현은 활기차게 외치고서는 공룡과 라더와 함께 사진부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수현의 손에는 카메라가, 공룡과 라더의 손에는 폰이 들려있는 채로. 하루종일 갑갑한 교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간 셋은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정도 걷고 난 후에 수현은 여기서 잠시 사진을 찍자고, 그리고 사진전에 쓰일수도 있으니 구도를 조금 다양하게 잡아달라 부탁했다. 지나가는 차들과 우뚝 서있는 가로수들, 만개하는 꽃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은 평소대로라면 그저 지나쳤을 테지만,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들려하는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의 요소들이자 풍경 그 자체였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이 길거리도 되게 예쁘네.” “응, 원래 관심을 조금 더 가지면, 무엇이든 예뻐보이거든. 이런 사소한 일상이나, 매일 보는 길거리도. 이 정도면 다 찍은 것 같은데, 저쪽 산이나 가볼까? 저기서 내려다보는 구도도 연습해볼 겸.”
“으어.. 올라오는 것도 꽤 힘드네.” 라더는 턱으로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말했다. 확실히 봄이다보니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었고, 아직까지는 동복을 입고 있는 라더, 공룡, 그리고 수현에게는 약간 더운 날씨였다. “근데 진짜 장관이긴 하다. 이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 우리 학교도 보이고.” “응. 학교 끝나는 시간까지 한 30분 정도 남았으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자.” 수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메라를 들어 이곳저곳을 찍기 시작했다. 라더와 공룡도 슬슬 일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수현아, 너 우리 사진 찍어줄 수 있어? 그.. 너무 풍경만 찍는거 같아서. 한번 찍어볼래..?” “어, 그래.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소리가 나며 라더와 공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네를 배경으로 친근하게 서있는 사진이 찍혔다. “어때, 잘 나왔어?” “응, 잘 나왔어. 인물 사진은 간만에 찍는데, 괜찮네.” “그래, 너무 풍경만 찍지 말고. 가끔 보면 너무 열심히 찍는거 같아. 좀 쉬엄쉬엄해ㅋㅋ” “알겠어.” 수현은 그렇게 대답하며 살짝 웃었다. 예상외로 괜찮네, 이런 말이 조그맣게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바삐 흘러갔고, 다른 동아리들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학교 내에서 활동을 했지만, 사진부는 집이랑 학교 수업시간에도 공부 많이 하는데 2시간 정도는 자유롭게 놀 수 있지 않겠느냐, 하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거리로 활동을 나갔다. “으아~ 밖에 나오니까 좋다.” 공룡은 기지개를 늘어지게 펴며 말했다. 공룡의 말대로 바깥의 날씨는 좋았다. 맑은 하늘과 그 하늘색과 대조되는 핑크색의 벚꽃잎들, 그 옆으로 아직 펴있는 개나리들. 수현은 이 풍경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벌써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응, 시험공부 하다가 나오니까 살 것 같네.” “아, 그러고 보니 너네 시험 공부 많이 했어? 한 1주 정도 남았는데.” “자~ 동아리 시간에는 사진 찍는거에 집중할까요?ㅎㅎ” 공룡은 얼버무리려는 듯이 웃으며 수현의 등을 떠밀었고, 수현과 라더도 웃으며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예쁜 시야와 각도에서 수현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 라더와 공룡은 서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야, 너 머리에 꽃 꽂아봐. 잘 어울릴 듯ㅋㅋㅋㅋ” “그래? 자, 꽂았다. 어때, 예뻐?” “어, 완전.” 공룡과 라더는 배꼽이 빠질 것 같이 웃어댔고, 반대편에서 하늘과 같이 벚꽃을 찍고 있던 수현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었다. “야, 찍어찍어. 이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사진이 될거야.” 라더의 머리에는 작은 벚꽃 하나가 꽂혀있었고, 곧이어 공룡과 수현도 머리에 작은 벚꽃을 하나씩 꽂았다. 주변의 지나가는 사람 한 분께 사진을 부탁드려서 나온 사진은, 잘 찍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가 듬뿍 담긴 한 장의 추억사진이었다. “잘 나왔네.” “그니까, 잘 나왔다ㅎㅎ” “이거 사진전에 올릴거지?” “당연하지, 이건 모두가 봐줘야해.”
몇 주간 준비해오던 중간고사가 지난주에 끝나고, 라더는 이번 중간고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게 나왔다며 수현과 공룡에게 같이 공부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수현과 공룡도 딱히 성적이 좋지는 않았기에, 좋은 생각이라며 라더에게 매주 월요일하고 금요일에 하자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사진부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스터디그룹이 만들어졌다. “각자 공부하다가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는 식으로 할까?” “그래! 좋은 생각인 것 같아.” “한 2시까지 해보자.” 수현과 라더, 공룡은 고개를 숙여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고, 다들 공부를 목적으로 해서 와서인지 집중을 그럭저럭 잘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늘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면 결국에는 수다를 떨게 되는, 왠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계속 있었던 암묵적인 규칙에 그 셋도 따라갔고, 약속했던 시간인 2시가 되었을 때는 이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갑자기 궁금해진건데, 너희 꿈이 뭐야?” 샤프로 문제집을 톡톡 치며 수현은 질문을 던졌다. “일단 나는 사진 찍는게 즐겁고 그걸 그나마 제일 잘해서 아마 대학교를 사진학과로 가서 사진작가나 그런 쪽 직업을 희망하고 있어. 뭐.. 그게 제일 나을 것 같더라고.” “나는 그냥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 가고 취업하지 않을까..?” “음.. 나는 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대학은 갈지말지 모르겠어.” 수현을 따라 라더와 공룡이 자신의 미래 계획을 말했다. 꿈이라 하기엔 뭣하지만, 그 나이에 꿈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미래도 꿈이라고 치는 것이었다. 꿈 얘기를 하면 늘 나오는 대학, 성적 그리고 공부 얘기들은 이미 부모님께 차고 넘치도록 많이 들었었기에, 셋은 그저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 인생 왜 이렇게 어렵냐..” 탄식하며 내뱉는 공룡의 말에 라더가 대답을 했다. “17년밖에 안 살아보고는 무슨.” “헉!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셨나봐요. 똑같이 17년을 사시고도 저런 말을 하실 수 있는 모습, 멋져요! 저에게도 깨달음을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ㅋㅋㅋ” “어허.. 안타깝지만 나도 아직 깨달음을 못 얻었단다ㅋㅋㅋㅋ” 수현과 라더의 주고받는 말로 방 안은 셋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 순간에 날아간 듯 했다.
동아리 시간이 2주가 흘러 다시금 찾아왔고, 수현은 이번 시간에는 지금껏 찍어온 사진들을 보정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정을 하면 더 전문적이게 보이거든. 무엇보다, 사진이 더 예뻐져.” 처음이니까 휴대폰 앱에서 보정을 간단하게 해보자고 수현은 말했고, 나중에 익숙해진다면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컴퓨터에서 사용해 보정을 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룡과 라더는 자신의 핸드폰에서 사진 보정을 해보기 시작했고, 수현은 사진기로 찍고 다닌 사진이어서 사진기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옮겨 보정을 시작했다. 휘도, 채도, 밝기 등을 조금씩 조정하자 사진은 전보다 밝아지기도, 칙칙해지기도 했지만 확실한 것은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조금 가지고 놀아보니 보정을 하는 것이 점차 익숙해져 라더는 인물의 실루엣을 두드러지게 하는 보정을, 공룡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한 보정을, 그리고 수현은 노란색과 보라색이 두드러지는 보정을 하여 사진들을 하나씩 본디 있던 자연 그대로의 색감에, 또다른 색과 특징을 더했다. 결과는 모두 만족스러웠고, 이 사진들은 하나를 더 뽑아 똑같이 보정을 해서 하나는 개인이 소장하고, 하나는 보고서에 붙여 내기로 결정한 뒤 셋은 헤어졌다. “다음 시간에 보자~!” “그래, 잘가~”
봄이 거의 끝나가는 5월 즈음에 공룡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한 장소에서 사계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날, 그곳을 찍어서 1년을 기록하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면 사진전도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고, 좋은 생각이라며 수현과 라더는 학교 운동장의 한쪽에 있는 느티나무와 교정을 배경으로 찍자 했다. 봄의 5월 이후 여름의 사진도 찍어야했는데, 7월이나 8월에는 장마도 있고 폭염 때문에 찍기가 쉽기 않을테고, 무엇보다 6월에 가장 색감이 예쁘게 나오기에 오늘은 여름의 풍경을 찍는 날이었다. 더운 여름의 시작이라는 듯이 해는 쨍하게 내리쬐었고, 수현과 공룡, 그리고 라더는 느티나무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삼각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삼각대를 설치하는 이유는 첫째는 같은 장소에서 찍어야하는데 삼각대를 설치해서 찍으면 더 정확해진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사진을 찍을 때 생길 수 있는 미세한 떨림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일단 몇 번 찍어볼까?” “그래, 내가 셔터 누를게.”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혹여나 더 예쁘게 나올까 수현은 셔터를 네 번 눌렀고,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보정 좀만 하면 여름 느낌 더 나겠다. 그러면 오늘은 끝인가?” “응, 각자 보정 원하는대로 한번 해보고 제일 예쁜거 고르자. 다 예쁘면 다 넣는거고~” “그래ㅋㅋㅋ 남은 시간 동안 뭐할까?” “매점 가서 아이스크림 사올까?” “오 좋은 생각. 갑시다~” “야 삼각대 해체해야돼!” “하고 와~” “저 자식이” 수현의 삼각대를 해체하지도 않고 달려오면서 소리치는 소리와 공룡과 라더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에서 울려퍼졌다.
고등학교 2학년은 본격적인 입시를 하는 학년이 아니더라도 다음 학년에 있을 입시를 대비하는 학년이었기에, 아무리 공부를 안 한다고 하더라도 기말고사는 모든 학생들에게 중요했고, 모든 학생들은 수현, 공룡, 그리고 라더도 포함했다. 그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기말고사 전에 한 번 더 있을 동아리 시간이 취소됐고, 오늘은 기말고사를 보고 나서 처음 있는 동아리 시간이었다. “동아리 시간이 한 번밖에 취소가 안 됐었는데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지?” “글쎄내가 너무 보고싶었던거 아닐까?” “음.. 그건 아닌 것 같다 공룡아ㅎㅎ” “하하, 너희 정말 너무한다~” 공룡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셋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번 시간에는 무슨 활동을 할지 고민했다. 앞으로 다가올 장마철의 전주인 듯 밖의 날씨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기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영화나 볼까?” “헐, 좋은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올까?” “도서관 별로 재밌는 영화 없는데.. 그래도 가볼까?” “그래그래, 가보자.” 충동적으로 간 도서관에는 공룡의 예상대로 재밌는 영화가 없었기에, 어렸을 적에 본 기억이 나는 라이온 킹 영화를 하나 대여하고 셋은 사진부 교실로 돌아왔다. 역시나 영화는 따분했지만, 동아리 시간에 영화를 보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짜릿했기에 시간은 즐겁게 흘러갔다. 영화가 끝나고 수현은 하루쯤은 이렇게 놀아도 좋다는 말을 했고, 공룡과 라더도 동의를 했다. 바깥은 아직도 비가 창문을 때리며 내리고 있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학업에서의 자유로움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여름방학은 기대가 되었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 휴식은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늘어지기도 했다. 늘어지다 못해 무기력해진 기분을 못 견디겠던 공룡은 같이 놀러나 갈까라는 말을 카톡방에 남겼고, 수현과 라더의 동의에 셋은 당장 내일 만나기로 했다. 놀러간다는 기쁨에 셋은 들뜬 마음으로 어디로 놀러갈지 정하지도 않은 채로 만났다. “그런데 어디서 놀지 안 정했네.” “음.. 바다.. 갈까?” “바다?” “응, 바다. 버스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어때?” “좋아, 라더야, 너는 어때?” “나도 좋아, 뭔가 설렌다.” “이렇게 계획없이 노는건 또 처음이니까. 그러면 버스 정류장 갈까? 버스는 915번이었던걸로 기억해.” “그래, 가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셋은 버스에 교통카드를 찍고는 올라탔고, 가는 30분 동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이어폰으로 노래도 듣고 작은 목소리로 수다도 떨었다. 사람이 얼마 없는 버스는 열심히 달려 해변가에 도착을 했고 수현, 공룡, 그리고 라더는 버스 기사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풍경은, 푸르고 청량한 바다였다. 여름의 쨍한 햇살이 반사되는 짙은 파란색의 바다가 셋의 눈앞에 넓게 펼쳐졌다.
“야, 나 던지면 진짜 죽는다.” “흠.. 원래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수현이 너가 그런 말을 하니까 하고 싶어졌는걸? 라더야, 갈까?” “그래, 가보자 가보자~” 공룡과 라더는 수현의 팔과 다리를 각각 붙잡고 바다로 달려가 수현을 바다쪽으로 던졌다. 풍덩, 소리가 나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수현은 벌떡 일어나 공룡과 라더에게 물을 튀기며 달려갔다. “너 일로와. 내가 물귀신이 되어 너희들을 다 나와 같게 만들어줄 거니까.” 수현의 모습은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기에, 공룡과 라더는 웃으며 도망쳤다. 그러나 수현의 꼭 바다에 빠지게 해야겠다는 굳센 목표는 결국 이루어졌고, 바다에서 실컷 놀고 해변가로 걸어나온 셋의 모습은 하나같이 흠뻑 젖어있었다. “으아~ 힘들다.” “여벌옷 안 가져왔는데, 너무 무턱대고 놀았네.” “재밌었으면 된거지~ 그리고 햇빛으로 말리면 되고.” “그래, 바다에서 이렇게 신나게 논 것도 진짜 오랜만이다.” “그니까. 수현이 달려올 때 진짜 무서웠어. 어우.. 완전 물귀신 같았음.” “나를 물에 빠뜨리면 그런 대가를 치르게 되는거란다ㅋㅋㅋ” “앞으로는 명심하겠습니다ㅋㅋ 안 그러면 수현이 또 물귀신 될거 같아.” “맞아~”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진 마루 위에 누워 셋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주변 편의점에 가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물놀이를 해서 피곤했는지 셋은 다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간신히 때맞춰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오늘 재밌었다~” “진짜. 완전 재밌었어.” “그럼 집 갈까?” “그래, 안녕~” “잘가~” 셋은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 앞에서 헤어졌다. 하늘이 점점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무턱대고 바다로 놀러간 그날 이후로, 셋은 전보다 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곧 있으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될테니 공부 양이 전보다 많아진 것과 서로 맞지 않는 학원 스케줄. 이 둘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그날 이후로 셋은 간간히 지나쳐가면서 몇 마디 나누는 것 외에는 만나지를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개학까지 이틀밖에 안 남았고, 라더는 개학하기 전에 한번만 다시 만나서 놀아보자 했다. 그렇게 라더, 수현, 그리고 공룡은 밤 10시에 급하게 나와 만났고, 라더가 미리 말했던 산으로 향했다. 요즘 별이 잘 보이던데, 산으로 올라가서 별이나 한번 봐보자고, 수현이 사진 찍는거 좋아하니까 사진도 찍자 하며 라더가 제안한 것이었다. 큰 손전등 하나를 들고 라더가 앞장섰고, 그 뒤를 수현,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공룡이 줄지어 산 위쪽으로 올라갔다. 10분 정도 걷자 셋은 정상보다는 조금 낮은, 전에 와봤던 곳에 도착했다. “근데 여기 되게 오랜만이다~ 3월이었나 4월에 한번 왔던걸로 기억하는데.” “맞아, 여기 전에 한번 왔었는데. 그때는 봄이었는데 이제 여름이네~” “말하자면 늦여름이지..” “야야, 하늘에 별 진짜 많다. 너 카메라 들고 왔어?” “당연하지, 별들 찍고 싶어서 조금 더 좋은걸로 가지고 왔어.” “오, 그러면 한번 찍어봐.” 수현은 카메라 렌즈를 하늘로 향해 놓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기분 좋은 소리가 나며 사진이 찍혔고, 수현 옆으로 라더와 공룡이 와 사진을 봤다. “우와, 잘 나왔다.” “그니까, 되게 예쁘다.” “별이 진짜 많네..” “저기 위쪽에 달도 있다. 초승달이네.” 수현, 라더, 그리고 공룡은 땅에 누워 별들을 감상했다. 수천, 수만 개의 별들이 그들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을 찍고, 필름 속에 간직해달라는 듯이. 수현은 그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별들을 계속, 한 장 한 장, 필름 속에 담아냈다. “..이제 갈까? 시간이 좀 늦었어.” “그래, 가자.”
눈이 깜짝할 새 여름방학은 지나갔고 개학식이 다시금 찾아왔다. 학교는 친구들을 다시 만난 반가움과 새 학기의 설렘으로 가득찼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안녕!” “안녕~ 얼마 전에 만났는데도 되게 반갑다. 개학해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학교에서 보는건 또 다르니까.” 공룡과 라더는 수현의 자리에 찾아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방학때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물론 재미없는 수업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어수선하지만 들뜬 새 학기의 분위기가 지나갔고, 동아리 시간이 찾아왔다. “이번 학기는 학기 말에 있을 사진전을 준비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거야. 물론 사진도 찍겠지만 사진을 보정하고 고르는 것이 전보다 많아질거야. 어쩌면 사진전에서 우리 사진을 엽서나 포토카드로 만들어서 팔 수도 있거든.” “그러면 수익은 우리한테 오는거야?ㅋㅋ” “수익은 기부하는걸로 알고 있어.” “아쉽다..” “큼, 어쨌든. 이정도면 설명 끝난 것 같고.. 오늘은 교내에서 사진 찍을거야. 1학기 시작했을 때처럼!” 학기 초보다는 확연히 친해진 사진부원들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직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듯이 햇빛은 쨍쨍했지만, 이제 가을이 찾아올 것이라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인 가을이 찾아오니까, 하늘 사진을 찍어볼까?” “그래. 높긴 하네..” 높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셋은 잠시동안 멍하게 쳐다봤고, 수현은 이내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라더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수현을 폰 카메라로 찍었고, 공룡은 그 둘을 한 앵글 내에 담아 찍었다. 도미노 같이 셋의 모습은 사진에 찍혔고, 수현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어이없으면서도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이거 진짜 웃기다..ㅋㅋㅋㅋ” “우리가 이렇게 찍는데 눈치를 진짜 못 채.. 집중력 되게 좋다 너” “아ㅋㅋㅋ사진 찍을 때는 주변 상황을 잘 못 알아채서.. 재밌다.” 높은 하늘을 향해 수현과 공룡, 라더의 웃음소리가 높이높이 올라갔다.
사진전에는 한 사람당 약 10장에서 15장의 사진을 올려야했고, 약 6개월 동안 사진부가 찍어온 사진의 양은 그의 몇십배는 되었기에 사진부원들은 대략 올릴 사진들을 간추리고 보정하기 위해 이번 동아리 시간을 쓰기로 했다. “막상 하려니까 막막하네.. 일단 마음에 들었던 사진들을 모아서 대충 간추려보자.” 수현의 제안에 공룡과 라더는 동의했고 셋은 사진첩 정리를 시작했다. 사진을 예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한 번 찍기 시작하면 같은 각도에서도 몇 장씩을 찍었기에 우선 그 사진들을 먼저 한 장으로 줄였고, 비슷한 느낌의 사진들은 삭제를 했으며, 마음에 들어 기억해뒀던 사진들은 따로 보관을 하며 많디 많던 사진들은 어느 정도 간추려졌다. “으아~ 이것도 일이다, 일.” 공룡이 크게 기지개를 피며 말을 했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기까지는 20분 정도 남아있었고, 10장에서 15장의 정해진 분량의 몇십배에서 4배 정도로 줄이는 작업은 끝나있었다. “앞으로도 사진을 더 찍을테니까 이정도만 일단 간추려놓고 사진전이 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간추리면 될 것 같아. 다들 수고했어~” “그래, 수현이 네가 진짜 수고 많았다. 너 우리보다 사진 훨씬 많이 찍어서 간추리기 더 어려웠을텐데.” “힘들긴 했지. 그래도 지금까지 한 활동의 결과라고 하니까 뿌듯했어.” “맞아, 진짜 뿌듯했어.” “..매점 갈까?” “오, 좋아. 가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셋은 가방을 들고 매점으로 걸어갔다. 적어진 분량과 함께 발걸음 또한 가벼워진 듯 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또 치르는 시간이 바삐 흘러갔고, 사진부는 추석 연휴를 맞아 달 사진을 찍자며 학교 앞에 모였다. 추석 당일에는 가족 행사 때문에 만나기 힘들테니 그 전날에 찍자고 라더가 제안을 했고, 수현과 공룡은 그에 동의를 하며 밤 10시에 만나자 했다. “다 모였으니까 거기 갈까?” “그래~” 이번에는 수현이 앞장섰고, 그 뒤를 공룡, 그리고 그 뒤를 라더가 뒤따랐다. 여름방학에 별을 다 같이 봤던 그 날 이후로 셋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밤하늘을 가장 보기 좋은 곳은 산의 정상에서 조금 밑에 있는 공터로 정해졌고, 달을 보려 하는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달이 어디있을까?” “아직 저기 뒤쪽에 있을거야. 조금 기다릴까?” 공터에 도착한 사진부원들은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달을 찍을 준비를 했다. “너희 다 송편 먹었어?” “응.” “어, 너는?” “나도 먹었지. 토끼 모양으로 되어있는거가 있더라고. 달토끼를 표현한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달 보이면 달토끼도 찾아볼까? 절굿방아 찧는 토끼 모양.” “그러자. 본적이 없어서 나도 궁금해.” 10분 정도 지나자 달이 그들의 시야의 오른쪽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로부터 5분이 더 지났고, 달은 셋의 머리 위에 떠 환하게 땅을 비추고 있었다. 달의 표면을 잘 보이게 초점을 잡고 수현은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공룡과 라더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달을 잡는 것처럼 보이거나 달을 먹는 것처럼 보이게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고 셋은 달을 보며 달토끼도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둥근 보름달이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한가위가 지나고 있었다.
떠다니는 구름들과 쨍하지는 않은 파란 하늘의 경치를 찍으며 만족하는 시간들이 흘러갔고, 동아리 시간이 다시금 찾아왔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색이 변해가며 떨어지기 시작했던 나뭇잎들은, 이제 바람이 불기만 하면 후두둑 떨어지는 상태가 되어 바닥은 색색깔의 낙엽들로 가득했다. “오늘 학교 안에 단풍이 들은 나무들과 낙엽들을 찍어볼거고, 계절 사진도 찍을 계획이야. 그러면 나갈까?” 수현이 오늘의 계획을 설명해줬고 사진부원들은 손에 카메라 또는 핸드폰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주황색 나뭇잎들을 나무에서 떨어트렸고, 아름답게 흩날리는 낙엽들을 공룡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서 라더는 낙엽이 많이 쌓여있는 곳 위에 서서 화면이 낙엽으로 가득 차게 사진을 찍었고, 수현은 하늘의 파란색과 나뭇잎의 붉은색을 대조시키며 사진을 찍었다. 어느 정도 각자 사진을 찍었을 때 라더가 삼각대를 설치하러 갔고, 가을인 것을 더 보여주기 위해 낙엽들을 사진 앵글 속으로 밀어넣은 뒤 수현이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약간 무거운 소리가 나며 사진이 찍혔다. “잘 나왔다. 얘도 각자 보정해서 오는거로 하자!” “그래, 그러면 우리 매점 갈까?” “또 나 두고 가려는건 아니지?” “잘 아네, 해체하고 와 수현아~” 공룡의 말에 수현은 이리 오라 소리 지르며 공룡을 향해 쫓아갔고, 공룡은 수현의 손에 붙들려 삼각대를 해체하러 갔다. “얼른 해체하세요~” “아, 네~ㅎㅎ”삼각대를 다 해체하고 수현은 해맑게 웃으며 다음에도 이러면 진짜 혼자 두고 간다 말했고, 공룡은 알겠다 하며 웃었고, 라더는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뭐 마실거야?” “제티 있나?” 셋의 사소한 대화가 오가며 바람이 불었다. 굴러다니는 빨강, 주황, 노란색의 낙엽들이 지금이 가장 가을의 좋은 때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2주가 지나 다시금 동아리 시간이 찾아왔고, 밖은 비가 오지는 않지만 꽤나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하늘에 파란색이 하나도 안 보여. 죄다 회색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전에 비 왔을 때 한번 빼고는 흐린 날에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네..?” “어, 그러면 오늘은 흐린 날씨 그대로 사진 좀 찍어볼까? 나중에 사진 흑백으로 바꾸면 분위기 있을 것 같은데.” “그래!” 회백색의 칙칙한 하늘 아래 사진부는 나와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흑백으로 바꿀 것을 생각해서 흑백 사진으로 찍으면 운치 있을 곳들도 찍고, 평소에는 많이 시도해보지 않았던 실내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텅 빈 교실을 배경으로 카메라 필름에 담아낸 사진은 공룡의 마음에 쏙 들었고 바깥을 멍하니 보며 앉아있는 수현을 찍은 사진은 라더의 마음에 들어 라더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수현이 모델 같이 나왔다. 분위기 있어~” “그러네ㅋㅋ” “아~ 졸리다.” “졸리면 자. 이 정도면 오늘 활동 끝난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나 좀 잔다~” 공룡은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위에 엎드렸다. 싫지만은 않은 정적이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겨울이 올해는 빨리 찾아왔기 때문에 많이 추울 것이라는 뉴스와 함께 12월은 시작되었다. 11월 후반부터 쌀쌀해진 날씨는 이제 롱패딩이 없으면 안되는 날씨가 되었고, 크리스마스와 함께 사진전도 다가왔다. 다들 사진전보다는 축제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했지만, 사진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지금까지 찍어온 사진들 다 골라낼거고, 계절 사진에서 겨울은 나중에 눈 올 때 따로 찍을거야. 그리고 무슨 사진들을 엽서로 만들지랑 배치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정해야해. 그러면 시작할까?” 수현의 말과 함께 작업은 시작되었다. 지난번에 1차로 분류를 어느 정도 해둬서인지 사진을 골라내는 것은 꽤나 쉬웠다. “와.. 1년이 한눈에 보이네. 이건 우리 처음 만나서 교내에서 사진 찍었을 때 사진이고, 이거는 벚꽃 보러 갔을 때 사진이고, 이건 바다 놀러갔을 때.. 우리 진짜 사진 많이 찍었구나..” “추억을 많이 쌓았네. 이거 다 나중에 보면 하나하나 떠오르겠다.” “어, 우리 추억 진짜 많이 쌓았다.” “첫날에 되게 어색했었는데. 그때 공룡이 이 학교 처음 왔었어서.. 거의 우리가 첫 친구였나?” “맞지~? 이 학교에서 사귄 친구는 너네가 처음이였지.” 미소를 지으며 공룡은 말을 이어갔다. “그 뒤로 좋은 추억들을 너무 많이 쌓아서 행복해. 사진부에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아.” “그래, 잘 들어왔다. 자~ 그러면 이제 사진전을 기획해볼까? 이거 시간 오래 걸릴거라서. 추억팔이는 이거 끝내고!” 장난식으로 투덜거리면서 라더와 공룡은 알겠다 했고, 셋은 사진전에서 사진들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차가운 밖의 바람에 대비되게, 사진부실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의 특유의 분위기가 공기중에 떠다니며 여명고 축제와 사진전이 시작되었다. 사진부는 사진부실의 벽에 사진들을 붙이고, 책상들의 위에 사진들로 뽑은 엽서들을 가지런히 놓으며 준비를 했다. “준비 다 된 것 같으니까 사진전 시작하자!” 수현의 눈이 희망차게 반짝였고, 사진전이 열렸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사진부실 밖에 붙여놓은 사진들을 보고 예쁘다 생각하며 들어왔고, 안으로 들어와 다채로운 색의 사진들을 보고서는 엽서를 한두개씩 가져갔다. 사진부원들은 엽서를 가져가는 손님들에게 아무것도 안 내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사진전을 알려달라, 준비를 많이 했는데 만족했는지, 그리고 칭찬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웃으며 전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셋은 책상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람 되게 많이 왔네, 완전 성공적이다!” “그니까,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줄은 몰랐는데.” “응, 우리 사진이 다 인기가 많았어. 계절 사진도 반응이 좋더라고.” 수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계절 사진을 봤다. 꽃이 많이 폈던 봄의 따스한 햇빛을 담은 봄의 사진과, 쨍한 햇빛이 내리쬐어 나뭇잎이 옅은 색으로 반짝거렸던 여름의 사진과, 울긋불긋한 색색깔의 낙엽들이 수북했던 가을의 사진과, 첫눈이 왔던 날의 설렘을 담은 겨울의 사진이 벽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엽서도 많이 가져가셨네. 뿌듯하다.” 공룡은 남아있는 엽서들을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엽서들은 각자 가장 아끼는 사진을 하나씩 골라 만들어졌고, 수현은 여름방학 때 놀러갔던 청량한 바다의 사진을, 라더는 첫날 어색하지만 즐거운 포즈를 지은 목련나무 앞의 공룡을 찍은 사진을, 그리고 공룡은 만개했던 꽃과 함께 찍었던 길거리의 사진을 골랐었다. 얼마 더 쉬다보니 다시 손님들이 찾아왔고, 셋은 다시 사진들을 보고 감탄하는 손님들을 보며 맞이해주었다.
사진전이 점차 끝나가자 사진부는 천천히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벽에 붙여놓은 사진들을 다 떼고 책상을 정리하자 정리는 어느 정도 끝나 셋은 멍하니 책상 위에 앉았다. “사진전.. 끝났네. 후련하다.” “응, 그리고 우리 1년동안 만든 추억들이 멋들어지게 남게 되었으니까. 맨 첫날이랑, 꽃 보러 갔을 때, 비 왔을 때, 바다 보러 갔을 때, 별이랑 달 봤을 때, 낙엽들 봤을 때..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다 사진으로 남겨져서, 그거로 추억할 수 있어서, 영원히 간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맞아, 그리고 수현이 너는 본래 목표도 달성했네? 전에 사진부 좀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 했잖아. 새로운 부원들도 좀 받고.” “그렇지ㅎㅎ” “그러면 나갈까?” 라더를 따라 수현과 공룡은 사진부실에서 나와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우리 마지막..은 아닐테지만, 다같이 사진 한번 찍을까? 단체사진으로.” “그래! 카메라 여기에 둘까?” “어, 타이머 눌러서 찍을거야?” “응, 다른 사람한테 찍어달라 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네.” 어느덧 노을이 져가는 시간이여서인지 수현의 말대로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핑크색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옅은 파란색의 하늘을 위쪽에 두고, 여명고의 본관을 뒤로 두며, 사진부원들은 이 사진으로 사진전을 끝내기로 했다. 공룡은 평소와 같이 장난스럽게 손가락 두 개로 브이를 만든 채, 라더는 늘 그랬듯이 입꼬리만 살짝 올려 미소를 지은 채, 그리고 수현은 항상 짓는 행복한 웃음을 지은 채, 셋은 그렇게 포즈를 잡았고, 수현이 맞춰놓은 3초의 타이머가 지나고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혔다. 라더와 공룡은 먼저 사진을 확인하러 걸어간 수현에게로 다가갔고, 셋은 같이 사진을 확인했다.
“잘 나왔다.”
“응, 그러게. 잘 나왔네.”
쾌청하고 높은 하늘 아래, 셋은 사진 한 장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