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인

콩님 (@Kkun_522)

* 자살 관련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 욕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김각별이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랜다.
뭐? 잠뜰이 벙찐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누가 뭘 해? 다시 한번 번복한다. 각별이 죽었단다. 오래전부터 꾸미고 있었던건지 유언에 유품에 이거저거 전부 준비해두고 떠났다. 시신은 고래중학교 뒤쪽에 위치한 하청산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산 중턱에 튀어나온 절벽 아래로 투신했단다. 시신의 사후경직이 진행되는 거로 봐서는 죽은 지 두세시간 정도, 그니까 학생들 등교하기 몇시간 전에 미리 학교에 와서 뒤졌다는 거다. 경비 아저씨가 아침 순찰을 돌다가 각별의 시신을 발견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고래중 학생들은 하루종일 시체 썩어가는 냄새에 시달릴 뻔했다.


 잠뜰은 각별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걔 유언에 나는 절대 못 오게 하라고 적혀있었대. 잠뜰이 턱을 괴고 투덜거렸다. 잠뜰은 각별이 미웠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부터 중학교 삼학년 때 까지 도합 칠년을 붙어서 살았는데, 돌연 뒈지고는 갑자기 쌩을 까버리는 꼴이 제법 미웠다. 거 같이 놀아준 친구가 장례식 참석해서 고인 가시는 길 별 탈 없으시라고 명복을 빌어준다는 게 그리도 싫었을까? 에휴. 잠뜰이 창문 바깥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하청산 앞 폴리스라인을 바라보았다. 폴리스라인이 선선한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날씨 되게 좋다. 날씨는 적당히 좋았지만 잠뜰의 기분은 썩 나아지지 않았다. 씨발. 좋은 날에 갔네. 잠뜰이 고개를 푹 숙이고 뒷머리를 헝클였다.


 잠뜰이 책상 위에 엎드렸다. 오늘은 영 수업 들을 기운도 나질 않았다. 잠뜰이 양팔 사이로 보이는 각별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각별의 책상 위에는 어제 급하게 나간다고 정리하지 못한 교과서와 유인물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경찰의 부탁으로 인해 정돈되지 않은 책상이 잠뜰의 심란한 마음을 덜어내주었다. 언제까지 저 상태로 보존해 둘 수 있을까. 잠뜰은 각별의 책상을 이번 연도가 끝날 때 까지 계속 정돈해두고 싶지 않았다. 저 책상마저 사라진다면 각별의 모든 흔적이 세상에서 소멸되는 것만 같아서 제법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뜰은 생각했다. 저 책상 언제쯤 정리하라고 시키실까, 누가 정리하고 짐은 버려질까 아님 각별의 집으로 배송될까. 책상은 언제쯤 빠질까, 빠진 책상은 창고에 박혀있으려나? 그럼 이제 이 교실에서 다시는 각별의 흔적을 볼 수 없나?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각별은 갑자기…… 왜 투신을 했을까.


 잠뜰은 오늘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각별 생각이 뇌를 뒤덮어 수업 내용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잠뜰의 필기노트에는 수업 내용 대신에 각별의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갔다. 칠년 지기 잠뜰의 절친이고, 전교 일 등 할 정도로 공부 존나 잘하고, 와중에 쫀심은 더럽게 세고, 공부는 다 잘해놓고 체육으로 평균 낮추고… 참나, 그런 주제에 하청산 중턱까지 어떻게 올라갔대? 산책 개념으로 갔다가 힘 빠져서 떨어진 거 아냐? ……라기엔 각별의 유언이 적힌 종이가 선명하게 활자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잠뜰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마음이 심란하다. 진짜 이 새끼가 뭐가 부족하다고 투신을 한 건데….


 잠뜰은 결국 오늘 점심을 걸렀다. 반에 찾아온 공룡이 점심도 안 먹을거냐며 타일렀지만 잠뜰은 고개를 돌리며 손짓했다. 됐어, 입맛 없어. 늬들끼리 먹어.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지… 람서 공룡이 교실 문을 닫고 나왔다. 잠뜰은 책상 위에 엎드려서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벌써부터 점심을 해치운 몇몇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자기들 친구 아니라 이거지……. 잠뜰은 귀를 틀어막았다. 오늘따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듣고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각별의 죽음에 대해 속삭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각별의 죽음은 등굣길에 잠시 쑥덕이고 말 화젯거리에 지나치지 않았다. 세상은 금새 각별에 대해 잊고 나아가는데 잠뜰 홀로 각별의 죽음에 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뜰은 앓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박잠뜰. 너 담임이 불러. 라더가 잠뜰 홀로 앉아있는 교실 문을 두들겼다. 빨리 나가라. 난 축구하러 간다. 어어, 그래. 잠뜰이 의자를 드르륵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별에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나 하러 싸도는 라더가 미웠다. 쟤는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해. 다른 애들은 김각별이랑 별 상관 없었을지 몰라도 서라더 쟤는 친구였잖아. 잠뜰은 괜히 아려오는 코 끝을 문질렀다. 속으로 라더 욕을 한바가지 퍼부우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슬리퍼를 죽죽 끌며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 저 부르셨어요? 어어, 잠뜰이 왔니? 와서 앉아봐.

 그…, 담임이 어렵사리 잠뜰에게 말을 꺼냈다. 잠뜰아. 잠뜰은 뚱한 얼굴로 담임을 바라보았다. 네, 선생님. 담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뇌하는 듯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각별이 일 말인데, 잠뜰은 각별의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꼴에 친구라고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올 뻔 했다. 선생님이 잠뜰의 등을 토닥였다. 아이고, 그래. 네가 마음 고생이 심하지. 그래서 각별이 일 말인데, 경찰 쪽에서 너한테만 알려주라고 한 게 있어서 말이야. 잠뜰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고 대답했다. …그래서 무슨 말인데요? 살짝 물기 서린 목소리가 애달팠다.






 그…
 각별이 자살 아니래.






 익사했대.
 …네?